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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리뷰

유랑의 달 영화, 가해와 피해의 모호한 경계

by skywalker 2023. 1. 19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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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랑의 달
영화 <유랑의 달>

이상일 감독이 선보이는 6년 만의 신작

영화 <유랑의 달>은 <악인>, <분노>를 연출했던 재일 한국인 이상일 감독이 선보이는 6년 만의 신작이다. 영화 <기생충>의 홍경표 촬영감독과 함께 손을 잡았고,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히로세 스즈, 마츠자카 토리가 주연을 맡으며 개봉 전부터 기대감을 모았다. 영화 <유랑의 달>은 동명 일본소설이 그 원작이다. 원작 소설은 2020년 일본서점 1위, 아마존 일본 종합 1위, 츠타야 서점 종합 1위, 37만 부 판매 베스트셀러라는 화려한 타이틀들을 달았을 만큼,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. 영화 <유랑의 달>은 소아성애자와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,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소재인 만큼 세심한 연출과 촬영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 여겨진다. 그러나 영화 <유랑의 달>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"모든 배우들의 섬세한 뉘앙스를 빛과 그림자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 촬영과 연출의 찰떡같은 궁합이, 말하기엔 부끄러우나 나에게 왠지 모를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다."면서 호평했다. 

가해자와 피해자, 15년 만에 다시 만나다

15년 전 한 소녀가 실종된다. 한동안 찾을 수 없던 소녀 사라사(히로세 스즈)는, 한적한 한 호수에서 낯선 남자 후미(마츠자카 토리)와 함께 있는 모습이 발각된다. 소녀는 남자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쳤지만, 그 자리에 서 있던 남자는 결국 체포를 당한다. 그리고 그 남자는 소아성애자임이 밝혀지면서 남자는 가해자로, 소녀는 피해자로 각인되어 버린다. 그러나 사실 사라사는 후미에게 납치됐던 게 아니다. 가족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던 사라사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늦은 밤까지 한 공원에 머물고 있었는데, 그런 사라사를 발견한 후미가 사라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던 것. 그 후 사라사는 후미의 집에서 평화로운 두 달의 시간을 보낸다. 그 사건 이후, 시간이 흘러 15년이 지났고, 사라사는 결혼을 약속한 연인과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. 하지만 여전히 사라사는 사람들에게 15년 전 소아성애자에게 납치됐던 불쌍한 소녀일 뿐이었다. 어느 날 사라사는 우연히 한 카페에 들르게 되는데, 그곳에서 15년 전 자신과 함께 있었던 후미를 마주치게 된다. 그날 이후 사라사는 자신의 연인과의 관계가 흔들리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후미의 곁을 맴돌기 시작한다. 사실 사라사는 후미에게 크나큰 죄책감을 품고 있었다. 15년 전 후미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은, 사라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본연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던 시간이었다. 그런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후미가 범죄자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해 늘 자책하며 살아왔던 그녀였다. 그런 그녀 앞에 다시 후미가 나타났으니, 사라사에게는 이 모든 것들을 바로잡을 소중한 기회였다. 하지만 사라사와 후미가,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. 

소아성애 미화될 수 있을까

성인여성을 사랑할 수 없는 남자와 가족으로부터 가족으로 성적학대를 받고 있는 소녀와의 만남.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 소재를 이상일 감독은 차분한 시선으로 풀어냈다. 그런 의미에서 영화 <유랑의 달>은 마음 속 상처를 지닌 이들의 이끌림, 그러나 획일적인 잣대로 이들을 재단하는 사회적인 폭력적 시선, 이면의 진실 등 깊이 생각해 볼거리들을 던져주는 영화이다. 하지만 소아성애가 미화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는 우려가 되는 지점도 분명 존재한다. 15년 전 사라사와 후미의 시간이 과연 순수한 인간적 교류가 오갔던 시간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일까. 물론 후미가 소아성애자라고 못 박는 부분은 없지만, 성인여성을 사랑할 수 없다는 후미가 사라사를 바라보던 그 눈빛 속에 과연 어떤 감정들이 담겨 있었을까 라는 부분에선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. 그럼에도 영화 <유랑의 달>이 흡입력 있는 스토리와 섬세한 연출을 자랑한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. 영화 <유랑의 달>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에 대해서, 혹 우리가 단면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,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는 않은지 이러한 이야기들을 나눠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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